이은규, 봄이 달력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

꽃봄을 줄게, 봄꽃을 다오
중얼거리는 사이 저만치 기억이 오고 있다

경고에 가깝거나
안내보다 먼 문장들에 오래 머뭇거리는
 
꽃잎 한 점 떨어져도
봄빛은 줄어든다, 속삭이던 목소리는 이제 없다
투명하게 웃는 얼굴들이 희미해지는 동안
안 보이는 발자국을 따라 길을 나서면

때로 어떤 순간은 영원이 되고
끝나는 듯 시작되는 길 위, 우두커니
무심코 지나친 풍경이거나 놓쳐버린 시간

저기 어떻게 흩날려야 하는지도 모르면서
고요하게 흩날리고 있는 점점의 벚꽃들이
사이드미러 풍경 안에 고여 있다
그 시간 속에 씌어 있는 한 줄 문장
사물이 거울에 보이는 것보다 가까이 있음

기억은 언제나 우리를 앞지르며 도착해 있다
봄이 달력에 보이는 것보다 가까이 있음

모든 봄은 지난봄을 간직한 채 피어오르고

가만히 있으라, 가만히 있지 마라

경고에 가깝거나
안내보다 먼 문장들에 머뭇거리지 않기 위해
이제 우리는 지난 사건을 발견하며
그 사건으로부터 뒤돌아보면서 나아가야 한다

그러니 봄꽃을 줄게, 꽃봄을 다오
저만치 기억이 오고 있다 선언하는 사이

 

Tag @ 시집<오래 속삭여도 좋을 이야기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