길상호, 물티슈

낡은 바다가 지어놓은 여관
그곳에 오래 머문 적 있다
주머니 속에서 굴리던 조개껍데기
무늬가 다 사라질 때까지,
옷깃을 스친 인연들이
인연 전으로 모두 돌아갈 때까지,
우리는 별빛이 끝난 새벽마다
창틈에 삐져나온 파도 한 장을 뽑아
서로의 때 낀 입술을 닦아주었다
파도는 아무리 뽑아 써도
쉽게 채워지곤 했으므로
너와 나 사이에 드나들던
거짓말도 참말도 점점 희미해졌다
그러다가 어느 날은
담장을 걷던 고양이가 같이 뽑혀와
붉은 혀로 쓰윽,
우리의 눈길을 핥고 가기도 했다
망막에 낀 얼룩이 사라지자
너는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
서먹한 얼굴로 각자 짐을 챙겨
그 낡은 여관을 빠져나왔고
남겨놓고 온 우리는
몇 겹의 파도가 천천히 지웠다